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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는 소를 겸한다."

내 인생의 모토다.
삶의 모든 면에 적용된다.

살아가며 "어느정도가 적당할까?" 에 대한 질문을 살아가며 끝도없이 반복한다.
"이 프로젝트를 끝내는데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1년을 살아가는데 어느정도의 돈이 필요할까?"
"그릇을 사려는데 어느정도 크기의 그릇들이 필요할까?"
"우리 가족이 사는데 어느정도 큰 집이 필요할까?"
"고향에 내려가는데 어느정도 걸릴까?"
"이 일을 해내는데 어느정도 인원이 필요할까?"
등등. 하루에도 수십번씩 "어느정도?" 를 되뇌인다.
이렇게 되뇌이는 이유는 단 하나,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계획성이 부족하다거나 결정장애가 있다거나 때문이 아니다. 
부족해서 곤란한 상황을 겪거나 남아서 처치곤란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묻는다.
"제자중에 자장과 자하가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어질고 낫습니까?”
공자가 답한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묻는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단 말씀입니까?”
공자가 답한다.
“아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의 유래다.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하는 것은 같다”라는 뜻이다.

완벽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부족한것을 인정하면 쉬워진다.
완벽하지 못한 것 중에서 모자란것과 지나친것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지나친것이 낫다.
수많은 선택과 고민에서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이만큼 좋은 선택지는 없다. 무조건 넉넉한 것을 고르는 것이다.
여지가 있는것을 선택하면 틀림이 없다.

프로젝트를 시작할때 스케쥴링을 한다. 모든 공정을 파악하고 필요한 인원을 구성하고 각 공정에 필요한 시간을 측정한다. 마지막으로 산출된 시간에 여지를 더한다. 통상 1.5배면 거의 정확하다. 남거나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모자란 경우는 없다.

약속이 있을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시간을 가늠해 본다. 일어나 샤워하는 시간,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시간, 여유롭게 커피한잔 마실시간, 옷을입고 소지품을 챙기고 하는 시간, 주차장까지 가는시간, 가다가 주유소에 들러 주유하는데 필요한 시간, 목적지 까지 이동하는 시간,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주차하는시간, 주차장에서 약속장소까지 이동하는 시간들 말이다. 그러면 다음날 몇시에 일어나 몇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지 밑그림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모닝알람 시간을 맞출때 '지나침의 법칙' 을 적용한다. 예상시간에 1.5배를 곱한 시간만큼을 적용해 출발시간을 앞당겨 일어난다.

예상했던 상황들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을 품고있다. 어떤상황으로 발생할지, 아니면 발생하지 않고 지나갈지 알 수가 없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재작업이 일어날 수도 있고 작업파일이 날라가 처음부터 다시해야 하는 비상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직원이 그만둬 공백이 생길수도 있고 인허가가 지연되기도 한다. 담당 공무원이 휴가를 떠나버려 맥없이 1주일을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공사중 사고가 발생해서 작업중지가 생기기도 하고 장마철, 폭설로 공사가 불가능한 사태도 생긴다. 인사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돌기도 하며 지진발생과 같은 천재지변을 겪기도 한다.
약속날 출발했다가 휴대폰을 두고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고 도로에 사고가 나서 밀린 차들이 꿈쩍도 않고 이삼십분을 가다서다 하는일도 생긴다. 주차장이 만차여서 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하염없이 뱅뱅 돌아야 할 수 도 있고 주차장이 없어서 인근 주차장을 찾아 돌아다녀야 할때도 있다. 차가 고장나 도로 한복판에서 긴근출동을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타이어가 펑크나 타이어 교체를 하고 가야 할 경우도 있다. 주유등에 불이들어와 급하게 들른 주유소에 차들이 줄을서 있는 경우도 있다.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못깨고 늦잠을 자는 일도 있고 나가려다가 급히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되돌아와야 할일도 있다. 지갑을 두고 오기도 하고 심지어 차키를 안가지고 주차장 차앞까지 가서야 알아차리는 일도 있다. 어떤때는 두고온 것이 한가지씩 순차적으로 생각나 집과 주차장을 몇번이고 왔다갔다 하는 일도 있다.

무슨일이 생길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리 여유를 두는 수 밖에 없다. 돌발사태가 생겨도 녹여넣어둔 여유시간이 커버해 준다. 
이렇게 확보하는 마음의 여유는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게 해준다. 운전을 서두르지 않으니 사고 가능성도 줄어든다. 누군가 '운전자의 사고는 운전습관에 기인한다. 오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운전습관이 변하지 않는 한 언젠가 사고는 반드시 발생한다. 운전습관으로 인해 사고는 이미 예정되 있는거다. ' 라고 했다. 맞다 평소 시간을 촉박하게 쓰는 습관은 결국 조급한 마음을 품고살고 그럼으로써 언젠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무엇이든 넉넉하게 선택하는 것은 습관을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수많은 건축설계를 하면서 언제나 이 화두를 머리에 새겼다. 공간을 창조하고 자재를 선택하고 설비스페이스와 전력량을 확보할 때도 여지없이 이 화두는 나의 결정을 도왔다.
'대는 소를 겸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크게크게 하지는 않는다. 분명 결정이 필요한 시점에 심리적 한계치를 안다. 적정함의 숫자에 어느정도의 가산이 되면 되는거다. "너무 큰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가변적인것을 좋아한다. 쉽게 싫증을 내는 사람인 탓이기도 하지만 실용과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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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에 관한 화두.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일 뿐이다"
육조단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혜능대사의 문답인데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오해가 있어 보인다.
마음을 바로잡으면 세상이 변하리란 기대다. 마음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태도의 변화로 자신의 세상이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상호연관성을 떠올리기 쉽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향해 '여기서 저리로 옮겨 가거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며 너희에게 못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라는 성경속 예수님의 말씀과도 결을 같이하듯 보인다.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는 세상을 마주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이야기 한것이고 평정심을 유지해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움직임에 한발 떨어져 바라보며 영향받지 않는 흔들림 없는 마음은 관조를 통해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일 뿐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나뭇가지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마음을 외부의 자극과 격리시키라는 조언이지
인생을 삼십년 정도만 살아도 무엇이 지옥으로 이끄는지, 천국에 머물게 해주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이 넘고 반백이 넘어도 여전히 마음의 지옥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건 마음이 어찌 움직이는지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놓을 수가 없어서 일 거다.
 
집착이란 그런거다.
애초에 다스릴 수 없는것을 어떻게든 다스려 보겠다는 욕심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면 괴로움은 더 커진다.
다스리려 맞서지 않고 하나씩 지우고 버리는게 낫다.
지우고 또 버려봐도 비워지는것 보다 담기는게 더 많으니 여전히 힘들지만 비우다 보면 습관이 되고 익숙함은 고통을 줄이고 더 많이 비울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담겨있던 것들을 줄여 간다.
무념을 위해 번뇌를 지워보려 하지만 지우겠다는 생각조차 번뇌가 되어 돌아온다. 번뇌가 번뇌를 낳는 모순.
패러독스를 깨는 방법은 생각의 시작을 없애는 것이다.
무념 무상은 멍때리는 순간과 유사하다.
걱정, 두려움, 배고픔, 갈증, 슬픔, 기쁨, 약속, 추억, 할일, 하기싫은일, 피곤함, 불편함, 더위가 버겁다 거나 잠들어 버릴것 같다던가 하는 식의 잡념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단 몇초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솟아 오른다. 무의식의 영역이라 스스로 컨트롤 할 수가 없다.
불멍 이나 물멍, 빗소리에 젖고 바람소리에 싸여, 새소리에 묻혀 있다 보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머리와 마음이 백지처럼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짧았지만 무색 투명 했던 시간에 대한 희열이 밀려온다.
생각조차 잊어버린채 그 순간 뭘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온전히 잊은 시간.
수만가지 계획과 판단, 결정을 위해 일분 일초도 멈추지 않고 365일 쉼없이 작동하던 두뇌회로가 멈추는 시간. 시스템이 멈춰 메모리에 아무것도 남아 있 지 않은 시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일백년을 살더라도 이런 순간들을 과연 몇시간이나 마주할 수 있을까? 아니 단 몇분 이라도 느껴볼 수 있을까?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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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되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살다보면 없어도 괜찮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가진 것들의 90% 이상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것들' 이 아나라 '없으면 아쉬운 것들' 로 채워져 있다.
없으면 아쉬운 것들은 물건, 인간관계, 지나간 시간들의 기억 등이다. 

그러면 내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버려보면 안다.
사실 실제로 버려보지 않아도 어떤게 버려지고 비워져야 할 것들인지 나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잘라내는 일이 어렵지 않다. 고민없이 버리면 된다.
버리고 난 후 살아가는 순간 순간 괜히 버렸구나...하는 후회는 생기지만 내 인생의 경로가 흔들릴 만큼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들. 이런 것들은 절대적으로 내 삶에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믿으면 된다.
이렇게 하나 둘 버려나가다 보면 무의미한 것들로 구성된 내 삶에 놀라게 된다. 
그만큼 내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어떤것들은 나 스스로도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버리고 난 후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버리는게 맞는지 잘못된 선택을 하는건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봐도 답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알아내기 위해서는 실제로 버려보는 방법밖에 없다.

나 스스로 판단내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는건 매우 힘든 일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이 일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를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드는 사회생활, 조직생활, 생계수단들이 그렇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를 반문하게 만드는 수많은 관계, 사랑, 우정들이 그렇다.
오랜 시간동안 나를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많은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마다 나를 가로막는건 어김없이 '두려움' 이었다.
'두려움' 과 마주한 채 집착의 고리를 끊어냈다. 버리고 나니 그것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버려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었을 것이란걸.
두려워 했던 만큼 내 삶은 망가지지도 송두리째 흔들리지도 다른 궤적을 향해 나아갈 만큼의 큰 지각변동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또 한번 놀랐다. 많은 순간 아쉬움과 후회가 일긴 했지만.
버려봄으로 얻을 수 있었던것은 '두려움' 의 실체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속박하는 '두려움' 에 맞서 집착을 버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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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오래된 친구처럼 친근하고 고마운 감정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에도 고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고독이란 감정은 내면과의 소통이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없이 잔잔한 호수처럼 있는 그대로가 투영된 흔들리지 않는 세상이다.
이 감정과 마주하는 것에 익숙해 지는 것이, 마주함 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나를 둘러싼 외적 환경에 의지하는 것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유리잔 과도 같다.
우리는 외로움이 두려워 주변에서 위로를 찾으려 한다. 손만 뻗으면 쉽게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면 외로움이란 존재는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외로움이 두려운것은 자아에 대한 믿음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모습만을 담아 남들에게 보여지려 몸부림 치는 이유는 타인을 통해서만이 나의 존재를 확인되는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로 행복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고 한다. 참 뼈때리는 말이다. 아무리 그렇게 해 보아도 공허한 자신의 모습은 속일 수 없다. 세상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은 알고있다. 
시선을 집중해야 할 곳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이다.
그 내면의 한가운데에 '고독' 이 자리잡고 있다.
피하고 외면하면 안된다. 도망가면 안된다. 
내면의 자아는 무서운 존재도 일그러진 모습도 아니다. 
가장 사랑스럽고 진실한 나의 모습이다.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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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즐겨라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인간의 어원이 서로 의지하는 '사이' 를 의미함은 우리에게 고독의 위치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어디쯤인가에 고독이 존재한다.

고독은 누군가에게는 '고통' 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유' 를 의미하기도 한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고독을 외로움으로 받아들인다면 마주하고싶지 않은 고통의 순간이 될 것이고 온전히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다시없이 소중한 순간이 될 것이다.

발 디딜틈 없는 지하철이나 강남 거리 한복판에서도 종종 고독감을 느끼는 걸 보면 고독이란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와 그리 큰 관련이 없는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고독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따뜻한 가족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정다운 벗과 술한잔 기울이는 동안에도 마음 깊은곳에 숨어있는 고독은 시도때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찌보면 고독이란 내면에 감춰진 또다른 나의 모습인 듯 하다.

한때 고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누군가와 어울리고 대화하면서 신나게 놀면서 망각을 찾아 도망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고독이라는 친구와 가까와 지기 시작했고 언제인가 부터는 거울에 비친 나와 대화를 나누듯 고독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 고독이라는 것이 평생 나와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고독과의 만남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 느낌을 갖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던것 같다.

'고독에 몸부림 친다' 는 말을 한다. 고독과 외로움을 흔히들 혼돈하기 때문인가 보다. 고독이란 감정은 그렇게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란 것을 모르기 때문인가 보다. 멀리 타향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면 외로움이 밀려든다. 타국에서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또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홀로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외롭다고 고독한것은 아니다. 
외로움이 느껴지는 때는 마주할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다.
내면의 내가 부재중일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고독이란 감정은 '자아' 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무언가를 위해 내 정열을 쏟아부을 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반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을때는 외로움 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내면이 나로 충만한 시기에는 외로움에 떨지 않고 고독이 반가와 진다.  
고독은 행복함이다. 만족감이다. 충만함이다.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때, 내 존재에 대한 회의가 몰려들 때, 상실감으로 좌절해 있을때 고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나의 자아가 흐릿해진 순간에 고독은 고통이다. 불안함이다. 삶의 걸림돌이다. 

외로움이 나와 타인간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면 고독은 나와 나 사이에서 우러나는 감정이다.
그래서 고독을 피하고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나 자신을 마주하기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고 있느냐에 따라 고독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니 고독과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한다. 내 삶이 긍정적으로 느껴질 때 고독도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다. 
완전한 고독이란 완전히 자유로운 기쁨충만한 순간의 다른 표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 말이다.
이런 순간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삶이 고독하다고 슬퍼하는 사람은 영원히 고통스러운 고독과 죽는날 까지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엄청난 부를 이뤘다고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지구의 아름다운 장소를 여행하고 다녀도 고독감은 늘 함께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며 살고 있어도 고독은 여전히 가장 가까운 나의 친구다.

진정으로 고독해 본 사람은 고독이 가져다 주는 평화로움을 안다.
한번 경험해 본 사람은 고독이란 절대 피하고 싶은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요즘 캠핑을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었다. 캠핑할 때 제일 좋은 시간이 불멍할 때다. 타들어가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마음을 어지럽히던 생각과 번민들을 잊는다. 쉼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을 잠시 꺼두고 온전히 나만의 세계로 빠져드는거다. 
이렇게 캠핑을 통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한다. 

고독을 즐기는 시간은 캠핑할 때 불멍하는 동안의 느낌과 매우 유사하다. 
불멍하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 자신에 온전히 침잠하면서 내면의 대화를 나눔으로서 지쳐있던 마음이 힘을 얻고 다시 살아갈 의욕을 얻는거다. 고독은 이렇게 나 자신과 직면하는 시간들을 의미한다. 
그러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고독은 불편한 진실이 될 것이고 자기사랑이 충만한 사람에겐 행복한 순간이 될 수 밖에 없는거다.

고독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자.
고독을 좋아하게 되면 확고한 자아와 건강한 내면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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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관계의 필요성

다양한 관계를 갖는 것은 보람 있고 풍부한 경험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수의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서 성취감을 찾을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더 다양한 사회적 범위를 즐길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것의 한 가지 잠재적인 이점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새로운 아이디어, 관점, 그리고 경험에 노출시킬 수 있고, 여러분이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배우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여러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요구와 요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며, 자기 관리를 우선시하고 자신을 과도하게 확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다양한 관계를 가질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결정은 개인적인 것이고, 여러분의 개인적인 필요, 가치,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성취감을 가져다 주는지를 고려하고, 여러분의 행복을 지지하고 증진시키는 관계를 배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한지 아닌지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궁극적으로 개인과 그들의 고유한 필요와 욕망에 달려 있습니다.

다양한 관계 네트워크를 갖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유익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다른 유형의 관계를 갖는 것(예: 로맨틱, 플라토닉, 전문가)은 삶의 다른 영역에서 지원과 성취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맨틱한 관계는 친밀감과 감정적인 연결을 제공하는 반면, 우정은 우정과 공유된 관심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관계를 갖는 것은 여러분을 다른 관점과 경험에 노출시킬 수 있고, 이것은 여러분이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고 배우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연결감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것은 전반적인 행복에 중요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많은 다른 관계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괜찮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과 가족들로 구성된 더 작고 긴밀한 그룹을 선호할 수도 있고, 그것은 완벽하게 괜찮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의미 있고 여러분에게 가장 큰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전반적인 행복에 기여하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관계를 몇 개 갖든, 큰 연결망을 갖든, 중요한 것은 그러한 관계의 질입니다.

나이와 인간관계의 범위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관계가 변하고 진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 더 많은 지인들을 가지고 나이가 들면서 더 작은 친한 친구들과 가족 그룹으로 초점을 좁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것은 종종 라이프스타일, 직업, 그리고 가족의 책임의 변화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 때문입니다.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삶의 상황이 새로운 관계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다른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화하거나 끝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이가 들면서,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를 우선시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기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시간을 만들거나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마련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이가 들면서 관계의 네트워크가 좁아졌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의 사회적 범위를 넓히려고 노력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관심사에 맞는 클럽이나 그룹에 가입하거나, 여러분의 공동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단순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균형을 찾고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사전 예방적인 자세가 중요합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로 이루어진 작은 그룹을 갖는 것은 괜찮고, 또한 여러분의 관계의 질이 양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작은 그룹의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것은 삶의 환경의 변화(예: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거나, 가정을 꾸리는 것), 관심사와 우선순위의 변화, 또는 단순히 삶의 자연스러운 진행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수량보다 품질을 우선시합니다:
    여러분이 나이가 들수록, 여러분은 관계에 헌신할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얕거나 충족되지 않는 많은 연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에게 가장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오래된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세요:
    어떤 우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전화, 문자 메시지 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옛 친구들과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3. 중요한 관계를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에게 중요한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친구들과 가족들을 따라잡기 위해 규칙적인 시간을 따로 두거나, 여러분의 계획에 그것들을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전화, 직접 방문, 또는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을 통해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따로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관계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지 생각하고 우선순위를 매기기 위해 노력하세요. 이것은 가족 구성원, 오랜 친구 또는 로맨틱한 파트너와의 가까운 관계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4. 열린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여러분이 나이가 들면서, 여러분의 관심사와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과거에 연결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우정과 관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열려 있으세요.
  5.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에게 가장 큰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관계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세요.
  6.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소통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고, 여러분의 관계에 대해 정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세요.
    여러분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전화, 비디오 채팅 또는 직접 방문을 위한 정기적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7. 새로운 관계를 찾으세요:
    여러분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친구들과 연줄을 만드는 것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밖에 내놓고 새로운 관계를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관계 그룹이 적다고 해서 네트워크를 계속 확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 취미, 또는 공동체 행사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찾으세요.
    여러분 관계의 질은 양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피상적인 관계를 많이 가지는 것보다 몇 가지 밀접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갖는 것이 더 좋습니다.
  8. 공동체 의식을 함양합니다: 여러분은 또한 비슷한 관심사나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클럽에 가입하거나, 여러분이 관심 있는 대의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거나, 여러분의 관심사에 맞는 행사나 활동에 참석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핵심은 여러분에게 기쁨과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몇명 정도가 적당 할까요?

"적절한" 진정한 친구의 수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개인이 가진 진정한 친구의 수는 매우 다양할 수 있고 성격, 생활 방식, 사회적 기술과 같은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한 친구들의 큰 그룹을 가질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들의 작은 그룹을 가질 수도 있고 단지 몇 개의 매우 가까운 우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정의 질이 여러분이 가진 친구의 양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진정한 친구들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각 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져야 할 친구들의 수에 대한 임의적인 기준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에게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진정한" 친구의 개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를 그들이 깊이 신뢰하고 신뢰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를 그들이 강한 감정적 연결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우정의 질이 양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되고, 믿을 수 있고, 좋을 때와 나쁠 때 여러분을 위해 그곳에 있는 몇 명의 진정한 친구들을 갖는 것은 많은 수의 지인들이나 가벼운 친구들을 갖는 것보다 더 성취감을 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얕거나 건강하지 못한 우정을 많이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의미 있고 긍정적인 몇 가지 가까운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친한 친구 그룹을 갖는 것이 사람의 행복에 이로울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한 연구는 강한 사회적 연결을 가진 사람들이 더 오래 살 가능성이 50% 더 높고 많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의 위험이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여러분의 관계에서 균형 감각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유형의 관계(예: 로맨틱, 플라토닉, 프로페셔널)를 혼합하는 것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원과 성취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핵심은 여러분에게 기쁨과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친구가 몇 명 있든, 더 큰 네트워크의 관계든, 중요한 것은 그러한 관계의 질입니다.


위의 글은 AI Chat-GPT 를 이용해서 작성한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조금도 반영하지 않고 순수하게 AI 가 만들어낸 글이다.
내가 읽어봐도 그럴듯 하다. 영혼이 1도 들어가지 않은 기계가 만든 글인데도 말이다.
참고로 언어기반 AI 인 GPT는 GPT-3에서 2023년 GPT-4 가 공개될 예정인데 이번 업그레이드는 거의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다.

직접 체험해 보고 이 소식을 접하니 좀 소름이 끼친다.

 

MIT Technology Review 의 기고 내용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대형 언어 모델들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올려놓은 모든 유해하고, 어리석고, 악의적이고, 거짓된 글들을 포함하여, 인터넷에서 추출한 문장들로 만든 데이터 세트를 기반으로 훈련 받는다. 완성된 AI 모델들은 이러한 거짓 문장들을 사실처럼 다시 활용하고, 이 모델들이 만든 결과물들은 다시 온라인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간다. AI 모델을 만드는 기술 업체들은 다시 인터넷을 뒤져서 문장들을 추출해 낸다. 이 과정에서 더 신뢰도 높은 대형 모델들을 학습시키기 위해 AI가 생성한 문장들을 잔뜩 퍼 담게 된다. 인간은 이렇게 제작된 대형 모델들을 이용하여 훨씬 더 터무니없는 글들을 자동적으로 만들어 내고, 이 문장들이 또다시 학습을 위해서 수집되는 등 끝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AI 가 참조할 데이터로 AI 가 생성해낸 모델들을 재 채집하여 데이터가 무한확대 되어 간다는 것이다.
허구로 만들어진 데이터가 돌고 돌아 규모를 키워나가는 악순환이 되어 현실이 외곡된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Text-to-image (글로 쓰면 글의 내용에 맞춰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알고리즘) 분야에서도 원작자의 그림이 데이터로 사용되는데 대한 저작권 문제가 이미 대두되고 있다.

가상세계와 현실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져 가고 있고 어느것이 가상이고 어느것이 현실인지 구분조차 힘들어져 가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있는 판단 기준도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이 점차 가상으로 만들어진 실제와 같은 세계에 잠식당하고 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AI 와 메타버스 가상세계는 어느덧 손쉽게 체험 할 수 있는 핫 트렌드가 되었다. 

새로운 물결에는 많은 부작용과 충돌이 발생한다.
선순환을 이끌어 내건 악순환을 이끌어 내건 변화는 과거의 전통적 규범을 깨고 태어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산통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분명 AI 와 가상현실은 인류의 문명을 뿌리째 뒤흔드는 커다란 발걸음이다. 
기술 문명의 발전 속도가 과거의 1/10 에 불과하는 시간으로 단축되었음을 생각할 때 변화의 속도를 인류가 따라잡고 적응하는데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을 사용자가 따라잡지 못하는 거다.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단계로 업그레이드 되는 기술들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점차 문명체계의 혼란으로 인식되며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그동안 내가 확보해 놓은 밥그릇을 뺏길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불편하고 나와 다른 변화들은 모두 자신을 위협하는 요소이고 공격해 쳐부숴 나를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인식될 수 박에 없다.
그럴만 한 것이 평생 쌓아온 자신의 인생이 새로운 기술로 인해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일이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한 변화는 현존하는 주류들 세대에 의해 강력하게 저지되기 마련이다. 전쟁무기와 담배, 마약이 절대로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처럼 변화는 그렇게 큰 장애물을 헤쳐나가야만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런 인류의 자기방어기재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벌써 수백년을 앞서가는 진보를 이뤄냈을 것이다.

기술문명 발전속도가 10년 단위로 단축되었음에도 변화가 적용되고 자리잡는데 한계가 있다. 최소한의 단위는 1세대다. 세대 단위의 발전이 인류문명 발전의 최소한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가 자라나도 기득권 세대화 되면서 가지는 인간본성은 답습된다.
급격한 변화 적응에 점차 빨리 익숙해지는 신세대 들의 가치관이 기득권세대로 자라난다면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도 달라질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자라면서 익혔던 신세대의 가치관이 기성세대로 변하면서 부모 세대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돌아가 버린다.
그나마 받아들이는 속도면에서 발전된 세대라는 점이 다른 점이겠지만 여전히 기득권 사수를 위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는 경쟁을 시작한다.
인류 역사는 이렇게 제자리를 맴도는 챗바퀴 처럼 흘러왔다. 

혁신은 그 모습이 구체적일 수록 기성세대의 장애물을 무너뜨릴 힘을 가진다.
AI 는 그런 측면에서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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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라공 :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 갈수는 없다.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이것은 희망이다.

에스트라공 : 무슨일이 있었니?
블라디미르 : 아무 일도 아니다.
에스트라공 : 난 가겠다.
블라디미르 : 나도 가야지.

이것은 절망이다.

에스트라공 : 그럼 갈까?
블라디미르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집착이다.


자꾸만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을 망각하는 에스트라공.
끊임없이 기다림을 상기시켜주는 블라디미르.
두 사람이 나의 내면에 있다.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이 온다. 절망의 순간이다.
기다림이 의미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한것 뿐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헛된 희망을 내려놓고도 떠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다.
필요한건 단 한걸음. 한걸음만 내딛으면 비로소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기다림에서 벗어나면 그때서야 보인다.
내려놓고 나면 그때서야 나의 삶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뚜렷이 보인다.

오지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맹목적인 희망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그러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기다림에 대한 미련.

이처럼 삶은 희망, 절망, 집착의 연속이다.
좌절과 미련속에 무언가를 기다리며 그 끈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기다림을 그만두었을 때 남겨질 공허가 두려워 반복되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이토록 힘든 것이다.
자유로와 지려면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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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조직사회나 인간관계에서나 핵심은 배려와 칭찬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든다.

리더쉽은 교육을 통해 발전 가능하다.
학습과 교육은 조직을 현명하게 이끄는 방법을 익히게 해 준다.

https://oasis-korea.tistory.com/4?fbclid=IwAR25DEifR7LFW3oG6SkoZQElXstwcZntQX2wjKTKElepOajOiaRKH9i40uM 

 

조직 충성심과 신뢰를 높이는 비결: 심리적 계약

심리적 계약 조직 충성심과 신뢰유지비결 5가지 동반자 의식.직원배려 최우선으로 즐겁게 일하는 풍토 일과 생활의 조화 직원의 경력개발 지원 최고와 함께하는 자부심 직원이 느끼도록 출처 :

oasis-kore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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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년 전의 글을 다시 읽어 본다.
14년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세월동안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 났다. 
그리고 나의 환경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30대에서 40대로 또다시 50대에 이르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살아오며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은 '기회' 와 '순환' 에 대한 문제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분명 내가 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며 살았다. 
그 시간의 터울 속에 몇번의 기회가 지나 갔다. 
본의건 타의건 간에 나는 이 기회들이 나에게 돌아오는 시점을 예측 할 수 있었고 또 예측대로 그 기회들은 나를 찾아 오곤 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기다리지 않아도 기회는 찾아 왔다. 
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두번의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내가 잡지 않은 기회는 기회가 아니다.
나는 잡으려 하지 않았고 기회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나에게 남기고 간 선물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돌아 순환하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떠나갔던 기회가 고맙게도 나를 다시 찾아 준다는 것.
발전과 변화는 움직이지 않고는 절대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고인 물은 썪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학습으로 듣고 머리로 익힌 지식이 이제 경험으로 겪어 가슴으로 느낀 교훈이 되었다.
세상살이에는 한가지도 허투루 보내버릴 만큼 의미없는 시간들은 없는 것 같다.
제자리 걸음으로 살았어도 시간이라는 수업료를 값비싸게 치른 만큼 더 소중한 인생의 지식을 쌓았으니 말이다.
아직 시들지 않은 열정이, 도전정신이, 변화하려는 의지가 머물던 동안에 충만 해 진 것 같다.
새로와 진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행동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보람이다.
재물은 돌아야 불어나고 사람은 움직여야 발전한다.
기회의 주기는 5년이다. 이 또한 귀가 닳도록 들어온 인생의 시크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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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럭키는 포조의 노예같은 존재다. 포조에게 짐승같은 대우를 받지만 벙어리라도 된듯 말한마디 안한다.
포조의 아바타처럼 명령하는대로 움직인다.
포조가 럭키에게 명령한다. "생각해" 라고.

책의 내용을 인용해 본다.


에스트라공 : 뭘 꾸물거리는 걸까?
포조 : 좀 물러서시오.(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럭키에게서 물러선다. 포조가 끈을 잡아당기자 럭키가 그를 쳐다본다.) 생각해, 이 돼지 같은 놈아!(사이. 럭키, 춤추기 시작.) 그만!(럭키, 멈춘다.) 앞으로!(럭키, 포조 쪽으로 다가선다.) 됐어!(럭키, 멈춰선다.) 생각해!

사이.

럭키 : 또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 .
포조 : 그만둬!(럭키, 입을 다문다.) 뒤로!(럭키, 물러선다.) 됐어!(럭키, 멈춘다.) 돌아서!(럭키, 관객을 향해 돌아선다.) 생각해!
럭키 : (단조로운 어조로) 프앙송과 와트만의 최근의 공동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까까 흰 수염이 달린 까까까까 인격신은 공간의 시간 밖에 존재하고 있어 하늘의 무감각과 무공포와 침묵 위 높은 곳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까닭은 모르지만 곧 알게 될 터이고 하늘의 미랑다의 본을 따서 고뇌와 불 속을 헤매는 자들과 함께 그 고통을 겪는데 그 까닭은 모르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고(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귀를 기울인다. 포조는 낙담과 혐오의 표정.) 그 불과 불길은 조금만 더 계속되면 마침내는 대들보에 불을 지르게 될 것이 분명한데 다시 말하면 지옥을 하늘까지 들어 올리게 되겠는데 그 하늘은 오늘까지도 때로는 파랗고 너무나 고요한데 그 고요는 수시로 중단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가우니 속단은 금물이고 또 한편으로는 미완성인데도 불구하고 블레스의 베르트와 테스튜와 코나르의 인체체체 측정학 아카카카데미 수상 연구 결과 인간의 계산에서 발생되는 오류 이외에 다른 어떠한 오류의 가능성도 배제된 다음과 같은 이론이 설설설정되었으니 바꾸어 말하면 속단은 금물이나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프앙송과 와트만의 연구 결과 명백하게 너무나 명백하게 밝혀진 바에 의하면(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처음으로 수군거리기 시작, 포조는 더욱 괴로운 표정.) 왜 그런지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미완성의 미완성의 테스튜와 코나르의 미완성의 미완성의 파르토프와 벨세의 노작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판명되었으니 즉 브레스의 인간은 테스튜와 코나르의 반대 의견과는 반대로 인간은 요컨대 영양 섭취와 배설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위고 있고 또 이와 병행해서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육체 훈련의 발달 스포츠 훈련의 발달 이를테면 테니스 축구 달리기 도보 자전거 경주 수영 마술 항공 테니스 빙상 스케이트 롤러스케이트 테니스 항공 겨울 여름 가을 가을 스포츠 잔디 밭 위의 전나무 위의 땅바닥 위의 테니스 항공 테니스 땅바닥 위의 바다 위의 공중의 하키 페니실린과 그 대용 약품에도 불구하고 요컨대 다시 말하거니와 인간은 왜소해지고(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다시 귀를 기울이고, 포조의 흥분은 고조되어 신음 소리까지 낸다.) 테니스 항공 구 홀짜리와 십팔 홀짜리 골프 빙상 테니스 요컨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세느 세느에와즈 세느에마르느 마르느에와즈 다시 말하면 동시에 병행해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여위어가고 오그라들어 다시 와즈 마르느를 들자면 볼테르가 죽은 후로 머리당 두 손가락 100그램 정도는 줄어들었는데 그 수치는 노르망디의 벌거벗은 남자의 몸무게에서 소수점 이하를 뺀 평균치로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그게 사실이고 보면 또 한편으로는 이게 더욱 중대한 문제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나니 더욱 중대한 문제지만 스타인버그와 페터만이 진행 중에 있는 실험에 비추어볼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나니 더더욱 중대한 문제지만(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감탄의 소리. 포조는 벌떡 일어나서 끈을 잡아당긴다. 모두들 소리친다. 럭키가 끈을 잡아당기고 휘청거리며 으르렁거린다. 모두들 럭키에게 달려든다. 그래도 럭키는 몸부림을 치며 대사를 외쳐댄다.) 스타인버그와 페터만이 포기한 실험에 비추어볼 때 들에서 산에서 바닷가에서 물가에서 물가에서 불가에서 공기는 똑같고 땅도 같고 다시 말해서 공기와 땅은 혹독한 추위로 공기와 땅은 오호라 제7기에 혹독한 추위로 돌들의 차지가 되었고 에테르와 땅과 바다는 바다와 땅과 공기 속을 엄습한 혹독한 추위와 곳곳의 깊은 구렁 때문에 돌들의 세계가 되었고 그것은 다시 말하거니와 왜 그런지 모르지만 테니스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그러하며 다시 말하거니와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돌을 위해서 다시 말하거니와 속단은 금물이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머리가 동시에 병행해서 왜 그런지 모르지만 테니스에도 불구하고 수염 불길 눈물 그토록 푸르고 고요한 돌들이 오호라 머리 머리 노르망디에서 머리가 테니스가 더욱 중대한 문제지만 포기된 미완성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요컨대 돌들은 다시 말하거니와 오호라 오호라 포기된 미완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머리 노르망디에서 머리가 테니스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오호라 돌들이 코나르 코나르가……(난투, 럭키는 그래도 몇 마디 소리를 더 지른다.) 테니스! 돌들이! ……그토록 고요한…… 코나르! ……미완성!…….

<고도를 기다리며> 중에서


생각하라는 명령에 럭키의 입에서 쉬지않고 쏟아지는 방언수준의 말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줄줄이 나온다. 맥락없는 문장들이 줄을 선다. 
하루, 한달, 1년 365일동안 내가 생각하고 내뱉지 않는 것들을 말하라면 럭키와 별반 다르지 않을것이다.
뒤죽박죽이고 이리 튀었다가 저리 튀었다가 개연성도 없는 생각의 단편들이 뒤엉켜 쏟아져 나올것이다.
나는 1초 동안 과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일어나 잠들 때까지, 아니 잠들었을때 조차도 나의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상상할수 없을만큼 많은 양의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지만 실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표현 이면에 잠긴 생각들은 그대로 묻혀진다.

그런데...들여다 보면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건 내 생각, 내가 표현한 것들이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생각들이다.
그것을 '잠재의식' 이라고 부른다.
말하지 않아도, 이성에 의지하지 않아도 이미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잠재의식 에 의해 결정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 삶인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잠재된 나에 의해 나는 조종 당하고 결정 지어진다.

망각은 생존을 위한 도구다

내가 무엇을 하고싶고, 어떤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어도 좋다.
이성이라고 생각하는 내 생각, 판단, 결정들이 나 스스로에겐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무의미함이다.
그러니 잊어도 좋다.
잊고 다시 기억하고 다시 잊어버리는 에스트라공 처럼.
잊어도 좋다.
달라짐은 없다. 
잠재의식은 언제나 이성의 이면에 깨어있으니까.

누군가 나에게 "생각해!" 라고 명하지 않아도
내가 모르는 나는 생각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 은 나에겐 커다란 걸림돌이다.
이성적 사고는 망설임, 불안, 후회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낸다.
반면, 잠재의식은 내가 상처를 입거나 위험해질 것 같은 순간에 회피라는 도구를 사용해 나를 보호한다. 망각이라는 도구도 사용한다. 이성이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해 준다. 
잊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도구다.

내가 너에게 잘못한일, 네가 나에게 잘못한일, 네가 나에게 해주기를 바랐지만 해주지 않아서 생기는 섭섭함, 내가 너에게 못해준것을 섭섭해 하는 너에게 느끼는 미안함.... 이런 온갖 번뇌를 끌어안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내려놓기 와 잊어버리기 는 동의어다.
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기억해 내더라도 다시 잊어야 한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살아진다.
그래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없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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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라공, 소년을 놓아주고 물러서서 두 손을 얼굴에 갖다 댄다. 블라디미르와 소년이 그를 바라본다.
에스트라공, 얼굴에서 손을 뗀다. 이지러진 표정.

블라디미르 : 왜 그래?
에스트라공 : 난 불행하다.
블라디미르 : 원 별소릴 다 하는군! 언제부터?
에스트라공 : 잊어버렸다.

 <고도를 기다리며 > 중에서 

에스트라공은 자꾸 잊는다.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조차도 잊는다.
기다림은 맹목적이다. 목적도 대상도 잘 모르지만 기다린다. 
기다림이 삶의 이유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도 기다림은 삶의 이유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며 사는가? 
부? 명예? 사랑?
기다리던 것을 만나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나는 기다림을 이유로 기다리며 살아간다.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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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마라
그 말에 상처받지 마라
그 행동에 상처받지 마라
잘 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혼자 잘 해주고 혼자 상처받지 마라

잘 해준 것도 잊어버리고
못 해준 것도 잊어버려라
베풀은 것도 잊어버리고
못 받은 것도 잊어버려라
덧없다
잘 해주고 받으려 했다면
그것 또한 욕심이다
잘 해주고 그 잘 해준거 계속 생각했다면 
그것 또한 집착이다

자식이나 친구나
배우자나 지인이나
잘 해준것 있다면 모두 잊어버려라
아직도 그걸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는 놓아버려라
설사 누군가 나에게 못 해준 것이 있다면
그것 또한 용서하라
그 시절 그 상황에 나에게 상처준 이가 있다면
그 또한 용서해 버려라

놔 버려라 덧없다
그거 기억하고 마음에 두고 있으면 나만 힘들다
내 인생만 무거워 진다
힘들고 아픈 일들
괴롭고 슬펐던 순간들
쥐어 잡고 있지 마라
아픈 마음 상처입은 마음 담고 살면
그런 일만 더 생긴다
그러니 지금 탁 털어버려라
지금 탁 놔 버려라
지금이 제일 좋을때다. 부질없다.
그 불덩이 잡고 있으면 내 몸만 탄다
내 가슴만 타 들어간다
이제 그만 놔 버려라

그래 이제 그만 놔 버리자
깔끔하게 흘려보내자
툭 놓아버리자
그래 그래 다 놓아버리자
속 시원하다
그래 놓아버리니 속 편하다
놔 버리면 이렇게 좋다
이렇게 놔 버리면 될 것을 그렇게 잡고 있었다
다시는 잡지 않을란다
이제는 내 삶을 살란다
내인생 내가 개척할란다
내가 하고 싶은거 하고
내가 마음 편한거 할란다
많이 있으면 좀 나누고
부족하면 좀 아끼고
물흐르듯 물흐르듯
그렇게 살아 갈란다

가족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가족들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남들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남들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그렇게 재밌게 살란다
방긋 방긋 웃으며 미소지으며
행복하게 살란다
하루 하루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란다

- 채환 -


내려 놓는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 왔다. 
누구에겐가 내 마음을 전하고 그를 위해 베풀고 챙겨주지만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만큼 상대는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에 혼자 마음속으로 상처받곤 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베풀면서 무엇을 기대한 걸까?
내가 준만큼 되돌려 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보다.

위에 적은 시는 생각으로는 내려 놓는다면서 결코 놓지 못했던 내 마음을 부끄러워지게 만들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주고 되돌려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
내가 상대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자책감
나에게 못해준 상대에 대한 서운함
잘해준것, 못해준것, 베푼것, 못받은것, 상처준것, 상처받은것 때문에 마음 상함
이런것들에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7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때 받았던 상처는 깊은 흉터로 남아 그 흉터를 들여다 볼 때 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화가 아직도 불같이 일어난다. 
결국 나만 힘든것을... 
참으로 어리석은 시간을 살아온듯하다. 
내가 잊으면 그만인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잊어버리면 자유로울 것을.
용서를 모르는 나 자신을 탓해야 한다.
아팠던 일들, 나에게 상처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나를 오랜 시간동안 아프게 한 것은 7년전 그때 그 시간도, 그 사람도 아닌 7년동안 끌어안고 곰씹으며 살아온 나 자신었다.

내려놓고 잊어버리고 용서해서
이제 그만 자유로와 지자. 행복해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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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친구간의 우정은 참 편하다.
오랜기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도 다시 만나면 어김없이 반갑다. 
친구사이에는 바라고 확인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가족이 긴 세월을 헤어져 지낸다고 그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 것 처럼 우정도 비슷하다. 관계가 사라질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문득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관계가 사라질까 걱정하지 않는다. 
다시 만난 친구는 지나간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편안하다. 언제 떨어져 지냈나 싶게 자연스럽다.
가끔 서로에게 화나고 실망하고 서운한 것이 있어도 괜찮다. 친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처럼 걱정이 없다. 
친구란 참 묘한 관계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데도 혈연과 같은 유대감이 연결되어 있다. 
아무리 먼 나라 타향에 떨어져 있어도 만나기만 하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원위치를 되찾는다.
친구에게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나와 다른점이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어도 친구로 지낼 수 있는것은 그 친구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구속하려 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함께 이 시대의 같은 시간범위 안에서 걸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내 모습을 친구에게 맞춰 바꾸려 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
일이 바빠 연락이 잘 되지 않아도 친구에게는 너그럽다. 무한한 이해심으로 일이 많이 바쁜가보다 생각한다. 연락이 안되고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불안하거나 마음 상하지 않는다. 이해심 저면 나의 잠재의식 속에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관계의 힘을 믿고 있다. 
남인데 남은 아닌 그런 관계다.

사랑

사랑하는 사람들의 거리는 친구와의 거리와 다르다. 매우 밀접한 관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인 사이에 연락이 두절되면 불안해 진다. 무슨일이 생긴건 아닐까? 나를 떠난건가? 연락도 못할만큼 바쁜가? 이생각 저생각을 한다. 
많이 아는 친밀도의 거리는 서로의 일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 본다. 
서로 연락하고 근황을 공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연락이 안되고 문자를 보내고 카톡을 보내도 회신이 없으면 불안해 하고 서운해 한다. 보낸 메시지를 읽고도 회신을 못받을땐 화가난다. 
오래 떨어져 있으면 관계가 약해진다. 긴 세월동안 연락없이 지내면 끝난 관계로 여긴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몰라주고 실망하는 일이 생기면 이해보다는 서운함이 앞선다.
친구처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인건 마찬가지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 커질 수록 욕심이 커진다. 
나와 같은 생각, 같은 취미,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길 원한다. 내 마음과 같기를 원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와 다른 모습에서 불만과 서운함, 부족함을 느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해 주기를 원한다.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을 바꾸고 싶어한다. 나를 상대에게 맞추려 노력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 한다. 나도 그것을 좋아하려 한다. 상대에게 동화되려는 노력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강도가 약해지고 그 모습 속에서 서로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서운함을 느낀다. 불만을 느낀다. 불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상대가 변할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소유하고 싶어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사회적 규범의 힘을 빌어 서로를 묶어두고 싶어진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부관계가 된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만든다. 가족공동체는 관계의 결속을 강화해 준다. 관계이탈을 강제적으로 구속한다. 규범의 구속으로 묶인 관계는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사회적 규범의 구속은 강한 소유욕을 낳는다. 서로의 독립적 존재가 인정되기 어렵다. 

구속

구속의 끈은 생각보다 약하다.
사회적 규범으로 묶인 구속은 더 약하다. 
전등 스위치와 같이 단 한번 스위치를 끄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종결될 수 있다. 
처음부터 남이었던 관계는 강한 결속력으로 하나라고 느끼던 착각에서 너무도 쉽게 깨어난다. 
연인이 이별하면 친구보다 못한 관계로 전락한다. 
더이상 상대를 소유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어제까지도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묶여있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아무 상관없는 관계로 바뀐다. 모르고 지내던 사람보다 더 불편한 관계가 된다. 
상대가 나와 같아지기를 바라지도 못한다. 내가 상대를 닮아가려는 이유도 없어진다. 관계는 이탈되고 없던것만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결혼이라는 규범은 다시 이혼이라는 규범에 갇혀 관계가 청산된다.
스위치를 끄는것은 한순간으로 충분하다.
사회적 통념과 규범에 묶인 관계의 구속은 이처럼 힘이 없다.
진정 강한 구속은 믿음과 상대를 인정할 수 있는 관계에서 이루어 진다.
믿음은 내 옆에 있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는 마음이다. 

믿음과 신뢰로 만들어진 관계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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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두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결사항전.

우크라이나는 세계에 도움을 호소하며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못했던 항전을 계속한다.
나토 우방국들과 유럽 연맹은 러시아를 보이콧 하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비난 여론을 띄운다.
무기 지원을 하고, 전범 조사를 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재제를 실시하고 고통분담을 한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정작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건 정작 우크라이나 뿐이다.


누구도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서 응원한다.
싸움을 부추기고 약자편에 서있는 자국의 위상을 높일 기회로 삼는다. 마치 자신들은 정의롭다는 듯 의기양양하다.
우크라이나 사회가 무너지고 난민들의 비참한 실태는 강건너 불구경 같다.
러시아와 국제적인 힘겨루기일 뿐이다.
유럽 국가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한데 뭉쳐서 러시아를 비난하고 서로 눈치를 보며 러시아와 관계를 끊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정의의 편에 서 있는것 같은데 까놓고 보면 자기 이익만 차릴뿐이다. 
인도적 아픔이나 전쟁의 고통 같은건 별로 관심없어 보인다. 
개가 봐도 웃을 일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는 러시아를 인류의 공적으로 생각하며 욕한다
강대국 사이에서 피멍드는 우크라이나는 사실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원조를 하고 무기를 지원하고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라는 약소국의 고통을 자국 입지를 세우고 위상을 견고히 하는 기회로 삼는다.


중국은 코로나 제로 정책을 쓰며 하필이면 이런 시국에 강제적 셧다운을 장기화 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급, 수요에 문제가 생겨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심각하다.
글로벌 경제를 삐걱거리게 만드는 중국의 상황에는 누구도 손가락질 못한다.
코로나 전파를 막겠다는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절묘한 상황 아닌가?
덕분에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돋보이게 되었다.
당장 중국 자국내의 경제상황은 힘들어 질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다시한번 확인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중국의 필요성과 중요함이 부각되고, 경제시장에서 수요의 중심, 공급의 중심임을 재확인 하게 되었다.
서방국가와의 경제 협력에서 더이상 배제될 가능성이 사라질 것이다. 높아진 위상은 중국의 향후 경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다. 외국 기업들을 상대로 유리한 조건으로 생산허가를 내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런 효과를 노리면서 당장은 아픈 제살 파먹기를 하는건 아닐까?
음모론이다.


전세계의 러시아 보이콧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너지 공급의 반사이익으로 러시아 루블화가 회복되고 경상수지 흑자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푸틴은 이런것 까지 미리 예상하고 전쟁을 하고 있는걸까?
단기간에 점령할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를 두달이상 전쟁을 끌면서 얻어지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건 아닐까?
음모론이다.


통제력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내가 사건의 연관성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스릴 수 있을 때다. 가장 강력한 통제력을 만든다.

둘째, 직접 상황을 다스릴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설명은 할 수 있는 경우다.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안도감을 느낀다.

세째,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설명도 할 수 없는 경우다.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절망하고 참담해한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우연이나 그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다니는 나머지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믿는 것이다.최악의  상황이다.

명확한 설명이 주어진 경우에도 그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그래서 한사코 다른 설명을 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런 무력감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 뇌는 아예 허용하지 않으려든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통제력을 회복하려고 시도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상황을 설명할 근거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들은 우리가 통제력을 잃으면 잃을수록 주변의 모든 일을 날조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강한 욕구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음모론은 이렇게 생겨난다.


최근의 국제 정세는 너무 답답하다.
뭐 하나 예측할 수도 없고 너무나 변화 무쌍하다.
쌓인 악재들은 점점 심해져만 가고 실마리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안개속을 걷는 상황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속에 사방에서 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이렇게 될거다, 저렇게 될거다, 낙관해도 된다, 비관적이다.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얘기 빼고는 모두 나오는 것 같다.
이럴때 음모론 한두개 만드는 것 쯤은 답답한 마음에 단비를 적셔주는 일 아닐까?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세상,
그러기 위해 힘없는 사람을 총알받이로 등떠밀어 내세우는 세상,
수만명이 죽어가도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지 않는 세상,
그러면서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추켜세우는 세상...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의 투사들이 떠오른다.
경기장 관람석에 앉은 관람객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투사들을 응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투사는 단지 생존을 위해 싸울 뿐이다.
관람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열광한다.

인류의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그 잔인함도 변하지 않는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 모습과 뭐가 다를까?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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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젊은 신입사원들이 가진 가치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기성 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유다. 시대를 거슬러 보아도 어느 때나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세대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단지 세대차이의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으며 연령의 차이도 날이 갈수록 범위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불과 10년 전 즈음만 해도 열살 차이의 나이와 경험은 어느정도 묻어가며 융화될 수 있는 범주였지만 지금 10년의 차이는 거의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보일 정도로 그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다. 따라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간다. 
기성세대를 비꼬아 '라떼세대' 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불과 서너살 차이만 나도 이제는 자칫하면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서로가 세대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것은 아니다. 열심히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려 애쓴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모든것을 해결 할 수는 없다. 극복하기 힘든 일도 있다. 이 시대는 세대간의 이질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마치 생소한 이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기성 세대는 기성세대 대로, 신세대는 신세대 대로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 하지만 취향이나 행동방식, 인생의 목표,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처럼 인생의 근본적인 부분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요즘 젊은것들은 말야....", "나때는 말이야....", "우리 꼰대는 말이야...." 식의 대화를 들어보면 세대간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 궤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최근 뉴스와 기사들을 통해 '디지털 Z 세대' 로 불리우는 요즘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콜 포비아' 라는 주제로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것을 종종 접한다. 인터넷에 '콜 포비아' 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다. 검색된 내용의 제목들을 살펴보자. 

대면만큼 '통화'도 두렵다… '콜 포비아' 호소하는 젊은이들
사소한 통화조차 두려워하는 '콜 포비아' 아시나요
[밀레니얼 시각] 콜 포비아에서 대화 포비아로
비대면 시대, 전화 꺼리는 '콜포비아' 급증세
콜포비아(Call Phobia 전화공포증)의 원인과 극복방법
디지털 세대의 '콜 포비아(Call phobia)' 해결 방안

제목만으로도 콜 포비아란 현상이 상당한 문제성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마치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는 듯이 떠들고 있다. 
언텍트로 인한 비대면을 넘어 통화조차 꺼리는 젊은 세대의 문제가 심각하고 이것이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은 어떤것들이 있는가 라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타이틀은 다르지만 내용은 신문사 일간뉴스처럼 대부분 빼다 박은 내용들 뿐이다. 
'콜 포비아' 라는 단어로 규정짓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정말로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할까? 대인기피 와 비슷한 의미로 불리우는 이 현상에 대한 해석이 과연 옳은 것일까?

내가 아는 젊은 세대들의 삶은 기성세대들이 위에서 떠들어 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어울리기 좋아하고 매우 건전하며 건강하다.
코로나 시대에 언택트 문화가 원인이라는 것도 사실무근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린시절 부터 그렇게 자라왔고 그것이 전혀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신세대의 분류로 붙여진 '디지털 Z세대' 는 이미 그런 모습이었고 지구상에 불어닥친 재난에 영향받아 생겨난 부정적인 현상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원래 그렇게 자라왔고 그런 환경에서 매우 익숙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아무런 문제 없이 서로 소통하고 살아가고 있다. 
'콜 포비아' 라는 말은 젊은 세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거나 알지못해서, 또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아 못마땅해 하는 기성 세대의 시각으로 만들어낸 거짓현상 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대면을 두려워하거나 전화통화를 피하는 세대가 절대로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기성 세대보다 더 적극적이고 솔직하며 예의 바르다. 정말로 대면이나 전화를 통해 진상짓을 하는 사람들은 7080세대에서 훨씬 많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마치 대면이나 통화를 피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아저씨 아줌마들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니까. 단지 그것 뿐이다. 자기가 이해할수 없고 모르는 현상이 자기의 잣대로 보아 다르면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변화와 현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삐딱한 색안경이다.

젊은이들의 소통방식은 그들끼리 편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게 편해서 그렇게 하는 것 뿐이다. 더 신속하고 더 자유롭다. 구속하지 않고 배려하려는 의식조차 잠재되어 있다. 실시간으로 무언가를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기성세대 식의 불안증과 조급증이 더 심각한 문제다. 젊은이들의 소통방식 안에는 그들만의 이해방식도 다르다. 마침표 갯수 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하고 미세한 단어나 문장의 길이 만으로도 상당히 정확한 감정을 주고 받는다. 기성세대가 죽었다 깨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밝고 건강한 우리의 젊은이들을 사회적 문제인 양 '콜 포비아 세대' 로 몰아가는 기성세대는 스스로를 돌아보길 바란다.
현 시대에 우리 사회를 염려스럽게 만들고 있는 건 오히려 '콜 포비아 세대' 를 걱정하는 기성세대 이다. 
멀쩡한 우리 젊은이들을 문제아로 몰아가려는 당신들이 정말로 더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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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잃은 범고래 어미. 세계의 눈이 집중된 "애도와 슬픔의 여행"
엄마 따라간 침팬지 플린트
동물들이 동료의 죽음에 무신경하다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다양한 종의 동물들에게서 죽음을 바라보는 모습의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동물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동물들은 슬퍼하고 위로하며 잊으려 애쓴다

www.hani.co.kr

 

 

동물도 인간처럼 죽음을 슬퍼한다 – Sciencetimes

 

www.sciencetimes.co.kr

 

야생동물들의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학자들에 따르면 코뿔소나 코끼리, 기린 같은 초식동물들은 늙어서 죽는 일은 있어도 암에 걸려 죽는 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호랑이, 사자, 살쾡이, 하이에나, 늑대 같은 육식동물은 모두 암에 걸려서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식동물은 암으로 죽고 초식동물은 공포로 죽는다

육식동물은 암으로 죽고 초식동물은 공포로 죽는다 요즘 학자들이 암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

blog.naver.com

공포는 수명의 단축으로 이어진다. 공포를 느끼면 맥박과 호흡이 빨라진다. 실 예로 생애 동안 포식자로 부터의 공포에 시달리는 토끼는 수명이 매우 짧다. 
호흡을 길게 하고 쉽게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이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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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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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애용하는 머그컵이다.
머그컵에 뚜껑이 있는데 닫았을 때 마실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뚜껑을 어느방향으로 닫느냐에 따라 오른손, 왼손으로 마실 수 있게 된다.
거의 매일 같이 사용을 하는데 마실것을 머그컵에 넣고 아이스볼을 담가 음료의 냉기를 유지하도록 한 후 뚜껑을 닫는다.
뚜껑을 닫을 때 마다 이번엔 어느 손으로 마셔야 하나를 잠깐 고민한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다.
마우스나 애플펜슬로 작업이 많은 날은 오른손으로 컵을 들면 불편하다. 그래서 손잡이를 중심으로 뚜껑의 홀이 오른쪽으로 위치하도록 한다. 왼손으로 마실 수 있게 말이다.
전자책 독서를 하거나 VOD 감상을 하면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려면 왼손이 일을 할 때가 많다. 이럴 때는 오른손이 빈다. 그래서 머그컵도 오른손으로 마실 수 있도록 뚜껑을 닫는다.

일상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이 선택이 나에겐 얼마나 사소한 일인가?
선택의 경중을 떠나 결국은 무언가를 택하게 되고 짧지만 순간 순간 고민을 한다.

선택을 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선택의 이유를 생각한다.
오랜 세월동안 몸에 익은 습성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데에는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버릇 말이다. 
몸에 밴 이 습관 때문에 목적과 이유가 없으면 선택을 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나의 마음과 잠재의식은 이미 선택을 마친 후인데도 마음이 결정한 것에 대해 적당한 이유를 부여하기 위해 머리가 움직인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든 마음이 먼저 끌려 내린 선택은 머리로 생각해 봐야 바뀌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갖 타당한 이유를 끌어다 붙여 나의 선택을 합리화 해 보려고 애를 쓸 뿐이다. 

부질 없는 짓이다.

선택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어도 된다. 
왜 나의 마음이 이끌렸는지 집요한 추궁을 해본들, 설령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이 끌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된들 무슨 득이 있을까?
나를 더 잘 알게 되는것? 내가 많은 순간 어리석다는것? 어이없게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 한다는것?
하루에도 수백번이 넘는 선택을 한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 어떤 일부터 처리할까, 어떤 옷을 입을까, 누굴 만날까, 전화를 할까, 날씨 확인을 해야하나, 어디를 가볼까 등등....

나의 행동을 방해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마땅한 이유로 선택에 옷을 입힐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지 못할 때이다. 이런 경우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렇게 이유를 찾아 실행에 옮기더라도 좋은 결과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놓고 만족도 못한다. 내가 하는 많은 행동들은 결국 처음 생각한 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그렇다면 결국 선택할 때 이유를 찾는 일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방해만 될 뿐이다.
살아오는 동안 세상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한 룰에 절차와 규정이 습관처럼 몸에 밴 때문이다. 습관은 인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나를 방해한다. 

행동을 방해하는 악습에 대처하는 방법론은 '즉시 한다' 이다. 
선 실행 후 생각이다. 
무엇에나 이유를 찾는 이 나쁜 습관은 뭔가를 하고자 할 때도 그렇지만 하지 않으려 할 때도 이유가 필요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온갖 이유와 핑계를 찾는다.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완벽주의자 이거나 욕심이 많은 사람이거나 아주 섬세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자기 자신을 못 믿는 다는것. 다른 표현으로는 자존감이 낮다고 한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하고 싶은것과 하기 싫은것을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어른들로 부터 생각좀 하면서 살아라, 멋대로 살지 말아라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마음가는대로 살라고 가르친다.
생각하면서 사는것은 절대로 인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주저하고 망설이고 움츠러들며 뒷걸음치게 만든다.  
마음이 하는 일을 항상 머리가 방해한다. 그래서 결국 이것 저것 시도를 못한다. 시도를 못하는 습관이 어릴 적 부터 몸에 밴다면 그사람의 인생은 안봐도 뻔 하다.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대로 한걸음씩 확인받으면서 살게 된다.
오래된 습관이라 바꾸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행동한다' 이다. 

이 방법은 실행의 이유찾기에 집중할 시간을 실행 결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 준다.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내면의 나에게 맡기자.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자. 
신기하게도 내면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너무도 확연히 알고 있는 듯 하다.
번민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습관이 내면의 마음에 맞설 때 생긴다.

이 세상의 유일한 진실은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다.

나의 선택에는 이유가 없어도 된다.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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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첫 걸음이 힘들다.
내가 가야 할 수백,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생각하며 시작할 때 쉽게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하지만 한걸음만 내딛자는 마음이라면 지금이라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한 걸음씩만 나아가자는 생각을 가진다면 새로운 시작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나의 작은 행동은 사고를 바꾸고 사고는 습관이 되며 습관은 운명이 된다.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한 걸음을 내딛는 작은 행동에 있다.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란 너무도 쉬운 일 아닌가?

에베레스트를 맨발로 넘은 한 승려에게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그 힘든 여정을 이겨 냈습니까?"
승려가 대답한다.
"저는 그저 한걸음 후에 다시 한걸음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한걸음씩 반복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습니다."

시작을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마음이다.
언젠가 적어놓았던 노트를 다시 읽고 옮겨 적어 본다.
그 때 적었던 것들 중 서너 가지를 행동에 옮기고 있는 나를 되돌아 보며 대견스러움에 토닥여 주고 싶다.

지난 모든일들을 떠올려라.

  • 행복했던
  • 괴로왔던
  • 두려웠던
  • 슬펐던
  • 부끄러웠던
  • 가슴설랬던
  • 치욕스러웠던

그 일들을 이겨냈던 기억을 떠올려라

생각하라. 모든것을 이기고 지금 살아 남았음을.

그 일들이 얼마나 불확실했었는지 상기하라.

  • 확실성을 원했지만 모든상황이 불확실했었음을 자각하라
  • 미래도 역시 불확실할것을 인정하라

앞으로 일어날 불확실성을 반겨라.

  • 불가능한 확실성을 잡으려는 생각을 버려라
  • 과거에도 똑같이 불확실했지만 모두 이겨내고 지금 살고있음을 자각하라
  • 미래의 불확실성도 역시 이길 수 있음을 믿어라. 지금까지 내가 이겼던것처럼.

모든 성공과 경험과 일은 불확실성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 나의 최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이다
  • 나의 차선은 실패하는 것이다
  • 나의 최선은 성공하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달리 행동하라

  • 다니던길 → 다른길로 간다
  • 깨면 집안일 → 아침에 깨면 산책을 한다
  • 살집찾기 → 한달간 여행을 떠난다

해보고 싶지만 불확실해서 피하던 일을 지금 해라

안전지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시도를 하라

  • 내가 절대로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방식으로 행동하라
  • 나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부터 해보라

기분이나 생각이 달라지기를 기다리며 평생을 보내지 말라. 행동을 바꿔라

  • 행동으로 운명이 바뀐다. 생각으로 바뀌지 않는다
  • 행동없는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 행동은 생각을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의심과 공포가 생긴다. 행동하면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다. 두려움을 정복하고 싶다면 집에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나가서 바쁘게 움직여라.”

주변의 저항에 신경쓰지 마라.

  •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것은 오직 내가 그 가능성을 믿을 때다. 
  • 스스로를 믿어라.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 주변의 저항에 부딪혀도 신경쓰지 마라. 무시해라.
  • 진심어린 조언이라 하더라도 나의 행보에 반대되는 걱정에 흔들리지 마라. 왜냐하면 그들도 모른다. 아는사람은 이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다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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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낙화. 이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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