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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두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결사항전.

우크라이나는 세계에 도움을 호소하며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못했던 항전을 계속한다.
나토 우방국들과 유럽 연맹은 러시아를 보이콧 하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비난 여론을 띄운다.
무기 지원을 하고, 전범 조사를 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재제를 실시하고 고통분담을 한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정작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건 정작 우크라이나 뿐이다.


누구도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서 응원한다.
싸움을 부추기고 약자편에 서있는 자국의 위상을 높일 기회로 삼는다. 마치 자신들은 정의롭다는 듯 의기양양하다.
우크라이나 사회가 무너지고 난민들의 비참한 실태는 강건너 불구경 같다.
러시아와 국제적인 힘겨루기일 뿐이다.
유럽 국가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한데 뭉쳐서 러시아를 비난하고 서로 눈치를 보며 러시아와 관계를 끊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정의의 편에 서 있는것 같은데 까놓고 보면 자기 이익만 차릴뿐이다. 
인도적 아픔이나 전쟁의 고통 같은건 별로 관심없어 보인다. 
개가 봐도 웃을 일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는 러시아를 인류의 공적으로 생각하며 욕한다
강대국 사이에서 피멍드는 우크라이나는 사실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원조를 하고 무기를 지원하고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라는 약소국의 고통을 자국 입지를 세우고 위상을 견고히 하는 기회로 삼는다.


중국은 코로나 제로 정책을 쓰며 하필이면 이런 시국에 강제적 셧다운을 장기화 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급, 수요에 문제가 생겨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심각하다.
글로벌 경제를 삐걱거리게 만드는 중국의 상황에는 누구도 손가락질 못한다.
코로나 전파를 막겠다는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절묘한 상황 아닌가?
덕분에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돋보이게 되었다.
당장 중국 자국내의 경제상황은 힘들어 질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다시한번 확인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중국의 필요성과 중요함이 부각되고, 경제시장에서 수요의 중심, 공급의 중심임을 재확인 하게 되었다.
서방국가와의 경제 협력에서 더이상 배제될 가능성이 사라질 것이다. 높아진 위상은 중국의 향후 경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다. 외국 기업들을 상대로 유리한 조건으로 생산허가를 내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런 효과를 노리면서 당장은 아픈 제살 파먹기를 하는건 아닐까?
음모론이다.


전세계의 러시아 보이콧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너지 공급의 반사이익으로 러시아 루블화가 회복되고 경상수지 흑자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푸틴은 이런것 까지 미리 예상하고 전쟁을 하고 있는걸까?
단기간에 점령할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를 두달이상 전쟁을 끌면서 얻어지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건 아닐까?
음모론이다.


통제력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내가 사건의 연관성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스릴 수 있을 때다. 가장 강력한 통제력을 만든다.

둘째, 직접 상황을 다스릴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설명은 할 수 있는 경우다.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안도감을 느낀다.

세째,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설명도 할 수 없는 경우다.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절망하고 참담해한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우연이나 그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다니는 나머지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믿는 것이다.최악의  상황이다.

명확한 설명이 주어진 경우에도 그 설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그래서 한사코 다른 설명을 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런 무력감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 뇌는 아예 허용하지 않으려든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통제력을 회복하려고 시도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상황을 설명할 근거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들은 우리가 통제력을 잃으면 잃을수록 주변의 모든 일을 날조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강한 욕구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음모론은 이렇게 생겨난다.


최근의 국제 정세는 너무 답답하다.
뭐 하나 예측할 수도 없고 너무나 변화 무쌍하다.
쌓인 악재들은 점점 심해져만 가고 실마리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안개속을 걷는 상황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속에 사방에서 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이렇게 될거다, 저렇게 될거다, 낙관해도 된다, 비관적이다.
내일이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얘기 빼고는 모두 나오는 것 같다.
이럴때 음모론 한두개 만드는 것 쯤은 답답한 마음에 단비를 적셔주는 일 아닐까?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세상,
그러기 위해 힘없는 사람을 총알받이로 등떠밀어 내세우는 세상,
수만명이 죽어가도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지 않는 세상,
그러면서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추켜세우는 세상...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의 투사들이 떠오른다.
경기장 관람석에 앉은 관람객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투사들을 응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투사는 단지 생존을 위해 싸울 뿐이다.
관람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열광한다.

인류의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그 잔인함도 변하지 않는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 모습과 뭐가 다를까?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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