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이 우리는 두려웠다.
우리 가족에게 전쟁은 결코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전보가 도착한 것은 8월이었다. 형의 몇 안되는 개인 소지품, 관을 덮었던 깃발, 필리핀 섬에 있는 무덤의 위치, 그리고 형에게 수여된 공군 무공십자훈장이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슬픔을 더해주며 하나씩 집으로 날아들었다.
미국 중서부 너른 평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형은 걸어서 학교를 다녔지만 하늘에 날아가는 비행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조종사가 되는것이 꿈이었다. 형이 스물 한 살때 우리는 워싱턴 주 시애틀에 살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형은 곧바로 가장 가가운 곳에있는 공군 신병 모집소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가냘프고 마른 편이었던 형은 4.5킬로그램이 모자라 체중미달로 입대를 거부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형은 어머니를 설득해 살이찌는 데 도움이 되는 온갖 종류의 음식을 만들게 했다. 형은 식사시간 전에도 밥을 먹었고, 식사시간 후에도 밥을 먹었으며, 한밤중에도 또 먹었다. 우리는 그런 형을 먹보라고 놀려댔다.
해군 사관학교에서 형은 저울에 올라섰다. 아직도 1킬로그램이 미달이었다. 형은 크게 실망했다. 그도 그럴것이 친구들은 하나둘식 군에 입대하고 있었다. 가장친한 친구도 이미 해병대에 들어간 뒤였다. 다음날 아침, 형은 기름기 가득한 베이컨 1킬로그램과 계란여섯개, 바나나 다섯개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큰팩에 든 우유를 셀 수 없이 마셨다. 돼지처럼 부른 배를 안고 형은 다시 해군사관학교의 저울에 올라갔다. 그 결과 백 그램 초과로 아슬아슬하게 신체검사에 통과할 수 있었다.
그 뒤 형이 워싱턴 주 파스코에 있는 비행훈련학교에 자원하고, 가족들과 상의하지도 않은채로 캐터필러 클럽(엔진 고장시 낙하산 비상탈출을 위한 클럽.캐터필러는 날개가 없는 애벌레라는 뜻)에 가입했을 때 우리 식구들은 고개를 흔들며 걱정을 했다. 어머니는 형이 무사하기를 빌며 날마다 기도를 올렸다. 형이 태어날 때부터 겁이 없는 성격이라는 걸 어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형은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공중 폭격 훈련을 받은 뒤 곧바로 해외로 파견되었다.
형은 그토록 날고 싶어하던 뉴기니 상공에서 비행중에 적의 포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것이 정부가 보낸 통지문에 적힌 내용의 전부였다.
어머니는 신앙에 의지해서 슬픔을 견딜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우리가 보기에도 눈에 띄게 늙어가셨다. 교회 목사가 와서 위로와 조언의 말을 건네면 아버지는 공손히 듣고 있었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슬픔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날마다 힘없이 직장으로 향했으며,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프리메이슨 클럽(협력과 우애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유명한 비밀 결사단체)뿐 아니라 다른 모든것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었다. 아버지는 프리메이슨 클럽의 반지를 갖는 것이 늘 소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고집에 따라 반지를 사기위해 매달 몇 푼씩 돈을 모으고 있었다. 물론 형이 죽고 나자 그것마저도 중단되었다.
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것이 두려웠다. 형은 크리스마스를 무척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가 되면 형은 뜻밖의 선물로 우리를 놀래키곤 했다. 그것은 늘 화제가 되었다. 형은 학교에서 몰래 새집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고, 어린 동생을 위해 신비한 장소에 애완용 강아지를 숨겨놓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번 최초의 돈으로 어머니에게 멋진 옷을 선물한 적도 있었다. 모든 선물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 형 없이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낸단 말인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삼촌과 숙모와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겠다고 연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 몇가지 동작을 취하긴 했지만, 우리의 마음이 그 속에 담겨 있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갈수록 더 오랜시간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근심이 더 깊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12월 23일, 정부에서 보낸것으로 보이는 또다른 소포가 우리 집에 배달되었다. 아버지가 돌처럼 굳은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가 소포를 풀었다. 소포 안에는 형이 입던 푸른색 군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났다. 도대체 왜 이런 날 이런 소포를 우리에게 보낸단 말인가?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형의 군복을 접어 치우기 전에 어머니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면서도 가정 주부의 본능으로 군복의 주머니를 하나씩 조사해 나갔다.
웃도리의 작은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50달러짜리 지폐가 나왔다. 지폐를 펴자 그 안에 형의 필체가 틀림없는 작은 종이 쪽지가 있었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프리메이슨 반지를 위해!'
내가 앞으로 백 살을 산다 해도 나는 결코 그 순간 아버지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기적의 손길, 기쁨의 암시, 그리고 조용한 평화같은 것이었다.
아, 사랑이 주는 치유의 힘이란! 아버지는 꼼짝않고 서서 그 종이쪽지와 고이접은 50달러 지폐를 손에 들고 바라보았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긴 시간 동안..... 그러더니 아버지는 벽에 걸려있는 형의 사진앞으로 다가가서 엄숙하게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 아들아!"
그리고는 눈물과 미소로 가득한 얼굴로 우리에게 돌아섰다.
-존 셔면 힐버트-
뜻밖의 선물이 마음을 움직이는건....
그 선물속에 상대방이 나를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들어있기 때문이겠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시간 속에 남겨진 마음은 변함 없이 영원하다.
먼 훗날 긴 세월이 흘러 지금 이순간을 돌아 보았을 때 그 시간 속에 담아 두었던 나의 마음을 발견 한다면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담아 놓은 시간들이 쌓여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인 삶이겠는가.
- 지금 이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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