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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에 넣어두는 것은 매일 돈을 까먹는 것과 같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돈의 가치는 매일 떨어진다.

무조건 장기투자가 좋은게 아니다. 어떤 기업에 장기투자 하느냐가 중요하다. 장기투자를 하더라도 깡통이 될 수도 있고 몇백배의 상승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방법은 구조적으로 오래 갈 수 있는 분야의 선정이 우선이다. 

분야를 선정했으면 큰 변동이 없는 안정적인 기업을 선택한다.

해당 기업의 주식을 보유 해 놓고 주가가 급락했을 때 적립하듯 산다. (급락은 흔히 일어난다.) 하지만 급락할 때 팔지 말라. 

일단 팔고나면 절대 저가에는 못산다. 

가격을 맞추려 하지말고 타이밍을 맞추려 하지 말라.

주가를 보지 말라. 초보들은 일반적으로 가격만 본다. 가격이 높고 낮음으로 판단한다. 가격을 보지 말고 시가총액을 봐라. 시가총액을 보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지 낮은지를 알 수 있다. 향후 어느정도 까지 상승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무조건 시가총액을 봐야 한다. 

영원한 주도주는 없다

트랜드에 따라 주도주가 바뀐다.

매년 주도주는 있을 것이지만 영원한 주도주는 없다. 주식시장은 트랜드가 있다. 트랜드에 따라 주도주가 되기도 하고 주변주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도 변한다. 기업은 무한히 노력을 하지만 노력만으로 기업이 성장한다는 보장이 없다. 

세상이 돌아가는 트랜드가 있고 트랜드의 변화에 따라 주도주였던 종목이 뒷전으로 밀리게도 된다. 

 

기업보다는 산업이 우선이다. 

주도주의 트랜드는 어떤 분야의 산업이 열리느냐에 달려있다.

산업이 열려야 기업이 일어난다. 전망있는 기업이라도 산업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기업이 살아나지 못한다. 날아오르는 기업은 산업의 문이 열렸을 때이다. 

예로 2014년 부동산 규제완화와 주택장려 정책이 발효 되었을 때 한샘주식이 엄청나게 올랐다. 인테리어 시장이 활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가지 못한다. 한샘의 경우도 돌발 악재가 생기기도 하고 하락이 생기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큰 상승을 이루었다. 끝까지 보유할 수 있으려면 지속적으로 검증을 해야 한다. 3개월 분기단위로 시장의 변화를 봐야 한다. 매도해야 할 이유는 기업에 영향을 줄 악재가 발발한 경우 뿐이다. 막연히 그러다 말겠지 라는 생각을 갖지 말고 기업의 향방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일어나면 과감히 손절해야 한다. 

손절라인은 얼마인가?

 

손절은 기준이 없다. 기업의 향방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없다면 큰폭의 하락이 있어도 손절 하면 안된다. 

몇번 손절 하면 계좌는 바닥난다. 20% 30%가 하락 했다고 손절 하면 안된다. 손절선은 몇% 라고 정해 놓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시장의 변동 원인은 다양한데 손절 기준을 몇% 라고 정해 놓는 것은 불합리 하다. 시장의 모든 기업이 전반적으로 폭락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일시적으로 이유없이 폭락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없는 폭락의 경우는 오히려 추가매수의 기회이다. 이런 경우 손절선을 정해놓고 폭락이 발생하면 손절 한다면 절대로 반등할 때 다시 매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더 하락할 것 같아서 바닥에서 잡지 못하고 반등할 때도 다시 떨어질지 오를지 몰라서 잡지 못한다. 매도시점까지 회복되어도 사지 못하고 있다가 매도한 가격을 지나쳐 계속해서 상승할 때가 되어서야 매수할 마음이 생긴다.

고정관념을 버리자

투자 할 때는 고정관념을 가져서는 안된다. 과거에는 이랬다 라는 기준은 최근들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의 기준이 무의미하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종목의 가격이 per 이나 과거 자료에 빗대어 생각하면 안된다. 이미 과거 기록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시장이 되었다. 기관이 무차별 매도를 해도 개인이 떠받쳐 시장을 상승시키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기대심리가 지나치게 반영되어 1000% 이상이 상승하는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과거 기록을 비교해서 거품이다, 과도하게 부풀려 졌다는 말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종목들이 부지기수이다. 

과거의 사례와 비교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어느 선이 거품인지 고점인지 너무 비싼가격인지 검증할 기준이 없어졌다. 상승가치가 어느정도인지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과거에는 이랬다 식의 고정관념을 무조건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시장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실적없이 기대심리가 반영되어 심하게 부풀려 진 기업이라도 그것이 현실이다. 시장과 사람들이 인정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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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가치는 희소성에 있다. 산업화된 대량생산은 동일함이 복제되는 순간 가치를 잃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희소성은 디자인의 가치를 무한하게 만들어 준다.

대량생산된 훌륭한 디자인을 모두가 공유한다는 것은 다수에게 미적욕구를 충족시키지만 소유자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흔한 물건이라는 생각에 그 디자인의 가치가 희석되고 만다.

여성들이 자신과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미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미를 표출하는 데 있어서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일반론이다. 유명화가의 그림이 높은 가치를 갖는 것도 세상에 유일한 작품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디자인은 공장에서 양산되는 순간 고유성을 잃는다. 상품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디자인 자체의 독립적인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에 매우 높은 가치를 두고 싶다.

사진은 눈앞의 광경을 카메라렌즈의 광학적 메커니즘의 힘을 빌어 저장한 것이다. 사진 속에는 단순히 눈앞에 보여지는 경관 뿐 아니라 그 순간 다가온 느낌, 시간, 빛, 기억 들이 합쳐져 한장의 사진으로 기록된다. 무심하게 찍은 사진 한장도 똑같은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없기에 소중하다. 사진 한장 한장이 세상에 유일한 기록물 들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고 출력할 수 있고 무한 복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세상에 유일한 사진이란 면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진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창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것들 중 하나이다.

 

미술작품, 손으로 만든 도자기, 핸디메이드 제품들, 수공예 가구, 캘리그라피 등등 소위 예술작품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희소성 과 소유성이다. 세상 유일한 물건은 소유함으로써 가치가 높아진다. 

 

즉흥적으로 만든 캘리그라피이지만 이 역시 세상 유일하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게 인간의 본성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혼자만 소유하고 싶은 본성 또한 가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제품들을 많은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면서 유니크한 제품의 소유욕 증가 또한 정비례 한다.

현대는 희소한 것들이 너무 쉽게 많이 양산되면서 그 희소성이 줄어들었다.

감성의 양산이 가능해진 시대다.

하지만 수많은 희소성을 지닌 것들 가운데 뛰어난 감각의 디자인은 보편적인 미적 충족감을 안겨줄 때 비로소 가치가 살아난다. 디자인의 질적 우수성이 있어야 희소가치가 살아난다. 

 

희소가치란 개념은 대중속에 살아가는 산업사회에서 중요시 된다. 이상향이겠지만 생산과 소유를 동등하게 하는 공산주의에서는 희소성이란 무의미하다.

희소성에는 근본적으로 경쟁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남과 다른, 남이 소유하지 못한, 남보다 더 뛰어난 등등 평가의 기준은 '남.보.다' 이다.

 

예술분야가 지니는 특성중 하나는 자기만족이다. 순수예술의 분야로 다가갈 수록 남에 대한 기준은 사라지고 나에 대한 기준이 커진다. 개인의 심상과 미적 욕구를 위해 이루어지는 행위인 예술의 본질을 생각해 볼때 예술작품의 희소성 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접근 자체가 잘못되었다.

 

디자인은 예술의 본질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이 가치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만족의 대상이 남이 되어서도 안되고 디자인을 하면서 희소성을 생각할 일도 아니다. 

디자인의 본질을 찾기위해 노력한 작품만이 훌륭한 디자인이다. 거기에는 '나의', '나를 위한', '나에게 만족스러운' 등의 키워드 들로 채워져야 한다. 디자인 단계에서 이미 "남들은 뭐라고 할까?", "남들에겐 어떻게 보일까?", "남들이 좋아할까?", "남들에게 어떻게 평가될까?" 와 같이 '남' 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면 당장 하던것을 집어던져버려라. 

싸구려 저질 문화가 트랜드가 되고 있는 시대다. 깊이 보다는 양이 우선되는 시대다. 전통 보다는 혁신을 우선시 하는 시대다.

싸구려 디자인이 트랜드를 쫒아가는 세상에 적응해 살아가는 현명함이라 생각된다면 그렇게 하라.

남들에게 인정받아 만족스러운가? 대중이 인정하면 당신은 성공한 사람인가? 대중의 인정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가?

쓰레기 같은 디자인이 만족스럽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명함에 '디자이너' 라는 문구는 절대 쓰지마라.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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