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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애용하는 머그컵이다.
머그컵에 뚜껑이 있는데 닫았을 때 마실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뚜껑을 어느방향으로 닫느냐에 따라 오른손, 왼손으로 마실 수 있게 된다.
거의 매일 같이 사용을 하는데 마실것을 머그컵에 넣고 아이스볼을 담가 음료의 냉기를 유지하도록 한 후 뚜껑을 닫는다.
뚜껑을 닫을 때 마다 이번엔 어느 손으로 마셔야 하나를 잠깐 고민한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다.
마우스나 애플펜슬로 작업이 많은 날은 오른손으로 컵을 들면 불편하다. 그래서 손잡이를 중심으로 뚜껑의 홀이 오른쪽으로 위치하도록 한다. 왼손으로 마실 수 있게 말이다.
전자책 독서를 하거나 VOD 감상을 하면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려면 왼손이 일을 할 때가 많다. 이럴 때는 오른손이 빈다. 그래서 머그컵도 오른손으로 마실 수 있도록 뚜껑을 닫는다.

일상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이 선택이 나에겐 얼마나 사소한 일인가?
선택의 경중을 떠나 결국은 무언가를 택하게 되고 짧지만 순간 순간 고민을 한다.

선택을 할 때마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선택의 이유를 생각한다.
오랜 세월동안 몸에 익은 습성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데에는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버릇 말이다. 
몸에 밴 이 습관 때문에 목적과 이유가 없으면 선택을 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나의 마음과 잠재의식은 이미 선택을 마친 후인데도 마음이 결정한 것에 대해 적당한 이유를 부여하기 위해 머리가 움직인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든 마음이 먼저 끌려 내린 선택은 머리로 생각해 봐야 바뀌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갖 타당한 이유를 끌어다 붙여 나의 선택을 합리화 해 보려고 애를 쓸 뿐이다. 

부질 없는 짓이다.

선택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어도 된다. 
왜 나의 마음이 이끌렸는지 집요한 추궁을 해본들, 설령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이 끌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된들 무슨 득이 있을까?
나를 더 잘 알게 되는것? 내가 많은 순간 어리석다는것? 어이없게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 한다는것?
하루에도 수백번이 넘는 선택을 한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 어떤 일부터 처리할까, 어떤 옷을 입을까, 누굴 만날까, 전화를 할까, 날씨 확인을 해야하나, 어디를 가볼까 등등....

나의 행동을 방해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마땅한 이유로 선택에 옷을 입힐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지 못할 때이다. 이런 경우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렇게 이유를 찾아 실행에 옮기더라도 좋은 결과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놓고 만족도 못한다. 내가 하는 많은 행동들은 결국 처음 생각한 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그렇다면 결국 선택할 때 이유를 찾는 일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방해만 될 뿐이다.
살아오는 동안 세상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한 룰에 절차와 규정이 습관처럼 몸에 밴 때문이다. 습관은 인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나를 방해한다. 

행동을 방해하는 악습에 대처하는 방법론은 '즉시 한다' 이다. 
선 실행 후 생각이다. 
무엇에나 이유를 찾는 이 나쁜 습관은 뭔가를 하고자 할 때도 그렇지만 하지 않으려 할 때도 이유가 필요하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온갖 이유와 핑계를 찾는다.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완벽주의자 이거나 욕심이 많은 사람이거나 아주 섬세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자기 자신을 못 믿는 다는것. 다른 표현으로는 자존감이 낮다고 한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하고 싶은것과 하기 싫은것을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어른들로 부터 생각좀 하면서 살아라, 멋대로 살지 말아라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마음가는대로 살라고 가르친다.
생각하면서 사는것은 절대로 인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주저하고 망설이고 움츠러들며 뒷걸음치게 만든다.  
마음이 하는 일을 항상 머리가 방해한다. 그래서 결국 이것 저것 시도를 못한다. 시도를 못하는 습관이 어릴 적 부터 몸에 밴다면 그사람의 인생은 안봐도 뻔 하다.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대로 한걸음씩 확인받으면서 살게 된다.
오래된 습관이라 바꾸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행동한다' 이다. 

이 방법은 실행의 이유찾기에 집중할 시간을 실행 결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 준다.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내면의 나에게 맡기자.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자. 
신기하게도 내면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너무도 확연히 알고 있는 듯 하다.
번민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습관이 내면의 마음에 맞설 때 생긴다.

이 세상의 유일한 진실은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다.

나의 선택에는 이유가 없어도 된다.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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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강화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자존감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인 자기 확신이기도 합니다. 자기 확신은 스스로를 '가치 있다' 고 생각하는 인식, 인생에 어려움이 와도 잘 이겨 낼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을 뜻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마음에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목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목표지요.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다시는 안 볼 듯이 싸우는게 인생사 아닌가요. 그런 마당에 스타일이 다를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건 불가능 하지요.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뇌에 입력되면 자존감이라는 주관적인 자기 사랑과 자기 확신이 흔들립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내 마음에 대한 이해가 우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 마음의 가치체계, 즉 내가 어떤 상황에서 내 행동을 근사하게 여기냐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나는 대가 없이 사람들에게 사랑과 우정을 베풀 거야' 라고 삶의 목표를 정하면 자존감은 계속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치 있는 희생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감성적 보상을 요구하는 게 본능이니까요. 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부모조차도 자녀가 나중에 나 몰라라 하면 섭섭한 게 인지상정이죠.

내 마음이 다다를 수 없는 너무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에 맞출 수 없기에 계속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목표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부 기준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학교 성적이나 승진 같은 사회적 성취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항상 결과가 좋을 수만은 없거든요. 인생사엔 굴곡이 있는 법이고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하강곡선을 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칭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칭찬은 남의 평가죠. 내가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열심히 잘 한다고 해도 그들이 전부 나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나한테 잘 해 주는 사람이라 해도 내가 싫어할 수 있듯이, 나를 별 이유도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어요. 그런데 거절을 못하고 꼭 할말도 못하는 행동의 이면에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의 목표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부 평가에 너무 의지하면 자기 확신이 떨어집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죠. 알아주든 말든 나만의 소중한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겠다는 배짱이 필요합니다.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선 비교에 의한 외부 기준 보다는 본질적인 가치에 마음의 목표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무리한 목표보다 작아 보여도 가치 있고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워 성공경험을 반복해서 느낌으로써 자아효능감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안 좋은 마음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건 목표가 아예 없는 겁니다. 목표가 없으니 자존감을 올릴 성공경험도 할 수 없죠. 삶의 목표가 '열심히 살자' 인 분도 있습니다. 이 역시 목표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열심히' 라는 건 삶의 태도이지 목적이 아니거든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자' 라는 목표가 있다고요?

'나를 솔직히 표현해도 통하는, 나와 케미가 맞는 사람들과 잘 지내자' 로 목표를 바꾸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을 잘하려면 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표현을 잘 못한다는 것은 관심이 너무 상대방에 쏠려 있다 보니 막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은 자기주장도 잘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거절 의사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채 타인에게 좋은 느낌을 주겠다는 목표만 갖고 있으면 타인에게만 나를 끼워 맞추게 되죠.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진정한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공허를 느끼기 쉽습니다.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내려고 하지 마세요.

<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 (윤대현 저) 중에서 >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는 말이 있다. 둥글게 살아가라는 의미다. 하지만 원만하게 살라는 말에는 견디고 참으라는 의미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 물론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즐거운 관계를 맺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언가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 코드가 맞는 친구나 연인 사이에는 비호감이나 싫어하는 성격의 상대에게는 기분 상했을 일도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는 관계가 아니라 즐겁고 편안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싶어 하는 사람은 그만큼 상대방의 평가와 시선에 목을 맨다. 조금이라도 안좋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못견뎌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나 보다는 상대방이 언제나 먼저인 경우가 많다. 친분의 깊이와 상관없이 그다지 친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조차 그렇다. 관계의 깊이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좋게 보이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은 언제나 뒤로 숨긴 채 호감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바쁘다.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부류다. 좀 더 과시하려고 애쓰고 자기에게 보여야 할 관심과 사랑의 에너지를 엉뚱한 데 소모하고 만다.
상대방의 평가에 상처받고 흔들린다.
뒷담화에 오르거나 자신에 대한 안좋은 소문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되는 경우에는 어쩔줄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반응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그렇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무시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남들의 시선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다.

삶의 방식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목표한 소소한 것들에 도전하고 성취하며 행복감을 느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오로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목표도 남들에게 보여지는 일을 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목표한 일을 해내더라도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행복해 하지 않는다.
목표 자체가 '나' 가 아닌 '타인' 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통해 위안을 얻는 대신 관계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또다른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강한 자존심은 낮은 자존감의 다른 모습이다.

그다지 친분도 없는 내가 아는 수많은 그저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쏟아부을 에너지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구, 연인, 가족에게 좀 더 집중해서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 지금을 사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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